사과의 채널

2007/08/18 07:12

윤석화씨에 이어, 이번엔 장미희씨도 학력 과장 및 위조 논란에 휩싸였다. 학력 위조에 대해 반응하는 형식을 보면, 신정아씨처럼 언론을 피하면서 도망가는 경우, 윤석화씨처럼 자신의 홈페이지에 갑자기 올려 놓고, (자신의 예상과 달리) 갑자기 이에 대한 관심이 폭주하자, 심야에 인터뷰를 하는 경우, 장미희씨 처럼 인터뷰를 바로 하는 경우 등이 있다.

지난 번에 <Quantity vs. Quality of Communication>(www.hohkim.com 2006년 1월 17일)이라는 글을 올려 놓은 적이 있었는데, 이러한 Quality에 대한 커뮤니케이션 원칙은 사과에서도 적용된다. 오히려, 더 엄격하게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 즉, face to face communication (예: 인터뷰, 기자회견) > verbal communication (예: 전화 인터뷰) > written communication (예: 홈페이지, 이메일, 보도자료 등)

장미희씨가 인터뷰에서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제대로 잘 했는가를 잠시 논외로 한다면, media channel로만 놓고 볼 때, 윤석화씨처럼 written communication으로, 그것도, 본인이 별로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홈페이지는 아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곳에, 슬쩍 올려 놓은 것보다, 처음부터 바로 만나서 이야기한 것이 사과의 기술적 측면에서 더 나은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실, 누구에게 사과를 할 때, 얼굴을 마주 보고 하거나, 전화를 거는 것보다, 이메일이 더 '편하다.' 왜냐하면, 맞닥뜨리지 않고, 일방향으로 보내놓고 잠시 불편함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편할 수는' 있겠지만, '제대로 된' 선택은 아니다. (이런 점에서 나도 내가 살아오면서 했던 '사과의 기술'에 대해 반성해보게 된다)

참고로, 위의 face to face communication에 새로운 채널이 될 수 있는 것이, 지난 번 jetBlue의 사례에서 보는 것과 같은 동영상을 통하는 것이다(관련 글은 여기에서 Junycap님의 포스팅을 참조). 이는 하나의 새로운 채널로서, 동영상을 통한 사과가 얼마나 효율적일 것인지에 대해서는 좀 더 사례가 쌓이고, 이에 대한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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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화씨가 16일 새벽 기자들과 만나 인터뷰를 가졌다.  인터뷰 관련 기사와 동영상은 이곳을 클릭하면 된다. 결국, 자신의 학력 위조에 대해 몇몇 언론들의 취재가 전개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연극배우인 박정자씨의 권유로 고백을 했었다고 한다. 주위에 박정자씨와 같은 충고를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은 윤석화씨에게는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중간에 은퇴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던데, 이는 아니라고 본다. 당분간 휴식 기간이 필요하겠지만, 후학들을 지도하고, 다시 멋진 모습으로 무대에 컴백하기를, 그리고, 그녀가 새롭게 출발할 수 있도록, 팬들이 그녀의 사과를 받아주는 분위기가 멀지않은 미래에 조성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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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의 기술(art of apology).

사과까지는 좋은데, 기술이라고 붙이고 나니, 좀 어색한 감도 없잖아 있다. '기술'이란 말이 '조작적'이라는 냄새를 풍기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과의 예술이라고 하는 것이 더 나을까?

어쨌든, 사과에도 기술이 필요할까?라는 질문에 대해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물론, 진심이 빠진 사과는 그 어떤 기술로도 진정한 사과로 만들 수 없다. 사과의 기술이 발휘될 수 있는 가장 기본은 진심(sincerity)이다.

위기의 상황이란 관계에 '상처'가 난 상태이다. 사과가 힘을 발휘하는 것은 상처난 관계를 치유하는(healing) 역할을 할 때이다. 사과의 기술이란, 바로 진심을 바탕으로, 그 진심이 사과를 받는 이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어, 상처를 치유하는 힘을 발휘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윤석화씨의 사과를 접하면서, 내 개인적으로 느낀 것이나, 네티즌들의 반응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이런 상처가 치유되기에는 다소 사과가 미흡하지 않았나, 라는 점이다.

윤석화씨의 고백을 '사과의 기술'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고 난 느낌을 이야기해본다.

1. Timing: 사과의 시점이다. 물론, 지금이라도 고백하고 그녀를 사랑하는 팬들에게 용서를 구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타이밍이 썩 좋지는 않았다(이지영씨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예술계 인사들의 학력위조로 검찰까지 나선 시점에서 사과를 한 것에 대해 그 순수성이 충분히 의심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의심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지금 고백하지 않고서는 못 배길 수 있다는 압박이 오는 상황이었을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 잘못이나 실수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사과는 '할 수 밖에 없는 시점'에서 하는 것 보다는 자신의 자발성이 보일 때,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사과를 '할 수 밖에 없는 시점'에서는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누구나 결국 사과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2. Complete Apology-Intention: 그렇다면, 학력을 위조했고, 안타깝게도 지난 30년 동안 사과할 기회를 놓쳤고, 예술계에서 학력위조 파문이 일고 있어, 지금 사과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했을 때는 과연 어떻게 해야할까?

사과의 timing을 놓치고, 사과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사과를 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달리말해서, 이런 상황(김옥랑씨의 학력위조 파문)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자신은 사과를 평생 안했을지도 모른다면, 그 때는, 자신의 사과행위가 100% 순수하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서도 사과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물론, 윤석화씨가 자신의 사과 타이밍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사과의 때가 너무 늦었음을 잠시 언급했다.

"어릴 적, CM송을 부르던 시절에, 철없이 했던 거짓말이 30년 세월 동안 제 양심의 발목을 잡았었습니다. 이제나 저제나 '고백'의 '때'를 생각했지만... 결국, 용기가 없어 주저하는 사이 이 '때'에 이르게 되었음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머니투데이, 스타뉴스에 나온 윤석화씨 사과문 중)

가정이지만, 만약, "이런 사건이 없었다면, 저는 이런 고백을 영영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더 양심의 가책을 느꼈고, 솔직히, 저의 경우도 남들에 의해 밝혀질까 두려웠습니다. 보다 더 순수한 순간에, 보다 더 순수한 마음에서 사과하지 못한 저를 부끄럽게 생각하고, 여러분께 용서를 빌고 싶습니다..."라고 이야기했으면 어땠을까...
 
3. Complete Apology-Contents: 윤석화씨의 고백이 공개되고 나서, 뉴욕대 학력도 의심을 받고 있다. 그녀의 뉴욕대 학력이 사실이기를 바라지만, 혹시라도 사실이 아닐 경우라면, 사과의 내용이라는 완전성에서도 결함을 갖게 되는 것이다.

사과란 bad news를 전달하는 것이다. 보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bad news를 good news로 전환하는 노력이다. Bad news를 전달할 때는 '원 샷'에 하는 것이 깔끔하다. 즉, 한 번에 모두 끝내서, 뒤에 '찜찜한 것'이 사과를 하는 쪽이나 받는 쪽에 남지 않게 하는 것이 좋다는 의미이다.

그녀의 '뉴욕대' 학력과 관련하여, 신동아 2005년 5월(통권 548호, 440-457쪽) 기사 <황호택 기자가 만난 사람: 무대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 윤석화>를 보면 다음과 같이 나온다.

"외국에서 유학하고 온 연출자가 그에게 유학을 권유했다.

'너는 공부를 더 하면 좋겠다. 나는 가끔 너한테 진짜 깜짝깜짝 놀란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것까지 너는 작품에서 집어내더라. 그런데 우리 사회는 디그리(degree·학위)가 없으면 아무리 옳고 바른 소리를 해도 인정하지 않는다. 너 같은 사람에겐 꼭 디그리가 필요해.'

'연극계에서 제가 알려질 만큼 알려졌을 때였어요. ‘주간여성’ 표지에도 나가고 언론 인터뷰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학부를 4, 5년 다니고 나면 잊혀질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어요. 연극을 평생 업으로 삼아도 좋을 것이냐 말 것이냐를 진지하게 고민하다 미래를 위해 4년이든 5년이든 투자하기로 결심하고 과감하게 미국으로 떠났죠.'

윤석화는 마침내 뉴욕대 공연학 학사 ‘디그리’를 안고 귀국했다."



지금 기사에 나온 것을 보면, 뉴욕시립대(City University of New York)를 신동아 기사에서 보듯이 뉴욕대(New York University)라고 가끔씩 이야기했나본데, 이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윤석화가 제대로 이야기했는데, 미국의 대학 시스템을 잘못 이해한 기자가 잘못 썼을 가능성도 있고, 아니면, 윤석화가 NYU로 인식되기를 바라면서, '뉴욕대'라고 슬쩍 이야기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참에 미국에서의 대학 학력을 이야기할 때, 당사자나 기사를 쓰는 기자나 명확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예를 들어, 내가 2년간 살았던 위스콘신(Wisconsin)주에 보면, 위스콘신 주립 대학(University of Wisconsin)만 해도, 캠퍼스가 13개에 달한다. (UW System 홈페이지 참조) 일반적으로, 가장 인정받고 유명한 캠퍼스는 그 13개 중 한 곳인 University of Wisconsin-Madison이다. 미국 학력을 이야기할 때, 자신의 캠퍼스를 명확하게 밝히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이는 본교와 분교를 차별한다는 문제점이 나올 수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미국 대학에 대한 '신뢰'가 많은 곳에서, 자신의 '간판'을 과장하는 풍토를 바로 잡는다는 의미에서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또한, 내가 한 학기(first quarter) 마치고 중퇴한 University of Washington(Seattle)이 있는 워싱턴주에는 Washington State University라는 곳도 있다. 모두, '워싱턴 대학'이라고 혼동될만하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리더들이 자신의 미국학력을 이야기할 때, 보다 분명히 이야기하고, 기자들도 괄호를 이용해서라도 분명하게 밝히는 것은 어떨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간판을 강조하는 부작용도 나올 수도 있겠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는 정확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만약, '뉴욕대' '디그리'에 있어서도 윤석화씨가 과장하거나 속인 부분이 있다면, 이는, 이번 사과에서 모두 고백했었어야 했다. 뒷끝이 없는 보다 완전한 사과를 위해서말이다.

* 여기서, 잠시 관련되는 또 한 가지 이야기를 해보자. 지난 2-3년간 한 병원에 가서 강의를 했는데, 그 곳에서 강의 시작 전, 나를 소개할 때마다 "워싱턴 대학 박사"라고 소개를 해서, 난처했던 적이 있다. 그 때마다, 강의를 시작하면서, 수강하는 의사분들께, 사실을 정정하느라 다소 어색했던 기억이 있다(강의 끝나고나서, 어떤 의사분이 내게 와서 "아, 저도 워싱턴 대학에 있었습니다"라고 이야기할 때까지 사실 정정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강의 시작전에 모두 앞에서 고치는 것이 더 낫겠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혹은, 다른 기관에서는, 강의자로 나를 소개하면서, 박사과정 한 학기 수료한 것을 그냥 "워싱턴 대학 박사과정 수료"라고 소개한 적도 있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내가 이해하는 수료란 논문만 쓰지 않고 수업(course work)을 모두 마친 상태로 알고 있는데, 어쨌든, 이런 경우에도 '한 학기 수료'라든지 하는 식으로 명확히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일부의 경우, 자신들의 모임이나 행사에 초대한 사람이나, 취재하는 인터뷰이(interviewee)의 약력을 과장하는 경우가 있다. 정덕희 교수의 경우에도, 비슷한 논란이 있는 것 같은데, 당사자인 자신이나, 이를 소개하는 언론사나 타 기관에서도, 정확성에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인터넷에서 2005년 신동아에 실린 윤석화 인터뷰 기사를 보니, 소제목에 이렇게 나와있다. "내용 좋은데 흥행 안 된 작품? 그건 '마스터베이션'이죠"라고. 이젠, 이렇게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자질이 좋은데, '간판'에 '개칠'한 인물? 그게 정말 '마스터베이션'이죠"라고.

오늘 오전만해도 들어갈 수 있던 윤석화씨 홈페이지가 접속이 되질 않는다. 연락도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이번 사건으로 우리 시대의 가장 뛰어난 재능을 가진 연극배우를 잃지 않기를 바란다. 오히려, 이번 사건으로 윤석화씨나, 우리나라 연극계가 자신을 정화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 한 사람의 팬으로서 윤석화씨라는 스타와 나 사이에 난 관계의 상처가 빨리 치유되고, 더 적극적으로 그녀의  팬이 될 수 있는 순간이 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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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출판쪽과 관련된 일을 하는 친구로부터 크리스틴 맥크렉켄이 지은 여자나이 마흔 전에 꼭 해봐야 할 88가지라는 책을 선물받아, 잠시 읽어보고 있다. 오늘 윤석화씨 뉴스를 봐서인지, 88가지 중 55번째가 눈에 들어왔다.

"실수하거나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모르는 척 그냥 넘겨버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당신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잘못이나 실수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게다가 모른 척 엎어두려고 하면 할수록 마음은 불안함과 죄책감 때문에 계속 더 힘들어질 게 뻔하다. 실수했다거나 일을 잘못 처리했다거나 누군가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면 정황상 마땅한 이유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자. 문제가 조용히 부글거리며 끓어오르다 저절로 잦아들도록 뒷짐만 지고서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98, 99쪽)

윤석화씨는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그녀가 "마흔이 되기전에"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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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화의 학력위조 파문을 전해들은 오늘 오전 좀 혼동스러웠다. 그리고, 나의 또다른 블로그에 <윤석화에 대한 실망스러운 놀라움. bad lie의 세 가지 조건, 그리고, 위기가 기회인 이유>라는 글을 오전 부산에서 올렸다. 함께 간 친구가 "바닷가에서까지 인터넷 하냐?"라고 툴툴거림에도...

부산에 갈 때, Seth Godin의 small is the new big이라는 책을 들고 갔었다. 이 책의 첫 부분에 보면 New Rules, New Winners라는 대목이 나온다. 그 중 하나가 시선을 끌었다.

"Multiple channels of information mean that
it's almost impossible to live a lie.
Authentic stories spread and last."


지난 번, <Web 2.0 as "PST" Social Technology?>라는 글을 통해, Web 2.0은 사회가 보다 투명해지도록 만드는(Prompting the Society to be more Transparent) 테크놀러지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올렸었는데, Seth Godin의 글을 읽고보니, 더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점차 거짓말을 하면서 살기 힘들어지는 세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당분간, 신정아나 윤석화씨와 같은 케이스들이 여기저기서 터질 것 같다. 보다 투명한 사회로 가면서 겪는 현상이리라.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 앞으로 드러날 사회속의 거짓말 시리즈들 속에서, 윤석화씨의 케이스처럼 내가 크게 실망할 수도 있다는 마음의 준비를.


* 이 내용과 줄긋기할 수 있는 포스팅

/ Jack Welch의 "What Leaders Do" Rule 4
/ Transparency: from "Paradox" to "Performance" (OR from "Barrier" to "Benef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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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호입니다. 이 lab은 위기상황 속에서 리더들의 커뮤니케이션, 특히, 사과의 기술이라는 측면에 대한 다양한 생각의 실험들을 해 나가는 곳 CRISIS Lab: ART OF APOLOGY입니다. by 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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